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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를 잘하자
[독서후기 8] 지구 끝의 온실(김초엽 저) 본문
'지구 끝의 온실(김초엽 저)' 독서 후기
* 필자의 주관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ㆍ제목 : 지구 끝의 온실
ㆍ저자 : 김초엽
ㆍ분야 : 한국소설
ㆍ발행일 : 2021. 8. 18
ㆍ책 소개
김초엽 첫 장편소설, 모두가 간절히 기다려온 이야기
이미 폭넓은 독자층을 형성하며 열렬한 사랑을 받고 있는 김초엽 작가는 더스트로 멸망한 이후의 세계를 첫 장편소설의 무대로 삼았다. 그는 지난해 말 플랫폼 연재를 통해 발표한 이야기를 반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수정하면서 한층 더 무르익도록 만들었다. 그리하여 장 구성부터 세부적인 장면은 물론 문장들까지 완전히 새롭게 탄생한 『지구 끝의 온실』이 2021년 8월 드디어 독자들을 만난다.
『지구 끝의 온실』은 자이언트북스의 네 번째 도서이다. 김중혁의 첫 시리즈 소설 『내일은 초인간』, 배명훈 장편소설 『빙글빙글 우주군』, 그리고 한국문학의 빛나는 일곱 명의 작가가 ‘즐거움’을 키워드로 쓴 단편소설을 묶은 앤솔로지 『놀이터는 24시』까지, 작가들의 자유로운 상상력을 응원하며 가장 그다운 작품을 선보일 수 있도록 해온 자이언트북스는 이번 주인공으로 김초엽의 『지구 끝의 온실』을 출간하였다.
(Yes24 제공)
ㆍ저자 소개
2017년 「관내분실」과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으로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대상과 가작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사이보 그가 되다』(공저) 등을 출간했다.
(교보문고 제공)
ㆍ독서 기간 : 2024. 6. 3(월) ~ 6. 12(화)
ㆍ평점 : 4.8 / 5
ㆍ책 내용을 요약해 본다면
→ 결과가 어둡더라도 꾸준히, 할 수 있는 걸 묵묵히 해내자
ㆍ저자가 전하는 메시지는
→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세계를 마주하면서도 마침내 그것을 재건하기로 결심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아마도 나는, 그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던 것 같다" - 작가의 말 中
ㆍ책을 읽고 생각해 볼만한 점
① 무엇인가에 광적으로 몰입해 본 경험이 있는가, 혹은 그런 대상이 있었는가?
② 작은 것이라도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고수한 경험이 있는가?
③ 어두운 결과가 예정된 일이라도,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수 있는가?
④ 외부 요인 및 환경과 무관하게 한 사람을 언제나 소중히 할 수 있는가?
ㆍ인상 깊었던 문장 필사, 그 이유(or 내 생각)
① 당장 목숨이 걸려있다면, 죽음 앞에서 누구나 이기적인 선택을 할텐데, 이런 생각이 드는 것도 수연의 말대로 아영 자신이 '이타적이지 않은 사람들의 후손'이어서 그런 것일까. 생각이 꼬리를 물다 보면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갔고, 결국은 더스트 이후에 태어난 모든 사람에게는 원죄가 있는 것인가 하는, 심오한 생각에 빠져들었다. (64p)
→ 더스트 시대에는 이타적인 사람들일수록 살아남기가 어려웠다. 그렇다면, 그런 사람들의 후손인 아영이 살고 있는 시대의 사람들은 어떤 존재일까. 다른 사람들의 죽음을 딛고 살아남은 자들의 후손은 어떤 존재일까. 살아남기 위해 이기적이어야만 했던 사람들은 과연 죄인이었던 걸까?
'죄'는 사전적으로 윤리, 종교적인 범죄나 법률, 사회적인 규범을 위반하는 모든 것을 총칭하는 단어다.
죄는 유행을 탄다. 즉, 시대가 변함에 따라 죄의 범위도 조금씩 바뀌는 것 같다.
그러나 한 가지 변하지 않는 범주는, 타인의 생명과 연관된 범죄는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살인자의 자식은 죄인일까? 나의 조상이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라면, 나는 죄인일까?
많은 범죄사건들은 시간이 지나면 잊힌다. 매스컴에 크게 조명되었던 사건들이 아닌 이상, 결국 사람들의 머릿속은 남보다 '나 자신'에게 더 직결된 문제들로 가득 차게 된다.
이기적이었기에 살아남은 사람들, 남들을 짓밟았기 때문에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들만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그 후손들은 자신의 선대가 죄로 인해 심판을 받았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더욱 이타적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전에, 후손을 위해서 우리부터라도 이타적인 삶을 살자.
② 좌표를 향해 차를 몰면서도 나는 정말로 도피처가 있으리라고 믿지 않았다. 그러게 생각하면서도 숲으로 향한 건, 지금이 아마라와 내가 보낼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일지도 모른다는 예감 때문이었다. (140p)
→ 나오미는 언니인 아마라가 주장하는 도피처로 향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도피처는 없을 것이라 믿는 나오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마라가 원하는 것, 희망하는 것을 저버리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설령 결과가 뻔히 보이는 일이더라도 말이다.
아마라는 더스트에 대한 내성이 없다. 언제 숨이 멎을지 모른다. 그런 아마라를 위해 나오미는 일종의 '희생'을 감내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미래가 정해져 있고, 그 미래를 바꿀 수 없다면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을 이루지는 못하더라도 희망을 짓밟지 않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에서 해당 부분은 '죽음'이라는 결과가 예정될 것이라 생각하는 상황이다(아마라는 사실 소설이 끝날 때까지 죽지 않는다).
우리 삶에서 자신이 정말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 잘못된 결과를 야기할 수 있는 과정을 고집한다면, 어떤 태도가 옳은 것일까?
상대방의 희망을 저버리지 않기 위해 이해가 안 되더라도 함께 지지해 주는 것, 결과적으로 상대방이 잘못되지 않도록 과정마다 개입하여 방향을 바꾸는 것.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치명적이지 않는 한 전자가 옳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 잘못된 선택을 한다 하더라도 응원하려 한다. 거짓말이라도 믿어보려 한다.
중요한 건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그 사람이다. 그 외 환경은 중요하지 않다.
③ "우리가 여기서 뭔가 쓸모 있는 존재라는 걸 증명해야 해." 아마라는 희망을 찾은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절박해 보였다. (151p)
→ 나오미와 아마라는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았던 도피처인 프림빌리지에 우여곡절 끝에 입성한다.
작가는 나오미를 이렇게 표현한다.
"아마라는 희망을 찾은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절박해 보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필요'와 '쓸모'는 굉장히 중요한 가치이다.
우리는 혼자 살 수 없다. 평생 주변인으로 살 수 없다.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하고, 그 속에서 소속감을 느끼며 삶의 가치관과 삶의 이유를 찾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이를 먹을수록 '필요한' 사람과 '쓸모 있는 사람'을 주변에 두고 싶어 한다. 그래야 내 삶이 더 윤택해질 것이라 여긴다. 일종의 본능이다. 원시시대부터 지금까지 '생존'은 인간의 최우선 과제이다.
이러한 본능은 현재 많은 '조직'에도 적용되어 언제 어디서나 '필요한 사람'이 가치 있는 사람으로 여겨지곤 한다.
우리는 '필요한 사람'이 되기 위해 지속적으로 자신을 증명해내야 한다.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실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며, 실력은 이론과 경험의 반복을 통해 쌓여간다.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이나, 사업을 하는 개인사업자나, 전문직이나 '쓸모 있는' 사람이 되자. 남을 위해서가 아닌 나를 위해서.
④ 마을에서 느껴지던 불안감은 이상하게도 오두막에 들어설 때면 사라졌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것도 아니고 기계 외에는 그다지 관심도 없는 지수 씨가 이 마을의 리더인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지수 씨는 안정감을 주는 사람이었다. 문제가 생겨도 어떻게든 해결해 줄 것 같다는 그런 종류의 안정감을. (189p)
→ 지수는 프림빌리지에 오기 전까지 각종 '빌리지들'을 거쳐왔다. 수많은 공동체가 생기고 무너지는걸 직접 겪은 사람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묵묵히, 남들이 기대하는 미래보다 훨씬 더 먼 미래를 준비하지 않았을까 싶다.
경험이 많았기 때문에 다양한 상황에 대해 올바른 대처가 가능했고, 이러한 대처들은 마을 사람들로 하여금 지수가 안정감을 주는 사람이라고, 리더의 자격이 있다고 여기게 만들었다.
리더는 내가 원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어느 조직에서나 그렇다. 리더는 구성원들의 신뢰를 얻어야 하고, 신뢰를 얻으려면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선 다양한 분야에서의 성과를 창충해야 하고, 성과를 창출하기 위해선 그만큼의 실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즉, 실력이 증명된 사람들에게 리더가 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다.
꼭 리더가 되려는 목표가 없다 하더라도, 실력이 증명된 사람은 어디서나 빛나게 되어 있다.
⑤ 실패할 수도 있지만, 어쩌면 대부분은 실패하겠지만, 그래도 일단 가보지 않으면 발견하지 못할 놀라운 진실을 그 길에서 찾게 될지 모른다고, 아영은 그렇게 말했다. (257p)
→ 생각 없이 읽어보면 아영의 생각은 '실패를 대하는 자세'라고 느껴진다. 그러나, 조금 더 생각해 보면 실패를 겪고 난 후의 생각이 아닌, 실패라는 결과가 예상된다 하더라도 그런 결과로 가는 과정 중에서 발견하지 못한 또 다른 무언가를 발견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인 것 같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다. 실패를 해본 사람에게 성공으로 다가가는 길이 열려있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결과가 좋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확신이 아니더라도 그러한 조짐)이 생기는 순간 시도조차 하지 않으려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럴 테고 나 역시 그렇다.
결과중심적인 삶이 지배적인 현시대는 결과가 좋을 때, 과정은 도약이 되고, 결과가 나쁠 때, 과정은 낭비가 된다. 이런 생각이 팽배한 세상에서 결과가 안 좋았더라도 과정에서 또 다른 배움(성공)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심어준 구절인 것 같다.
⑥ 레이첼이 마을의 해체를 원치 않았던 건 이 마을을 자신의 실험실로 생각해서가 아니었다. 그럼으로써 지수를, 자신의 옆에 붙잡아두고 싶었던 것이다. 정비사가 아닌 지수를 옆에 두고 싶어 했던 것이다.
그리고 레이첼의 그 내적 동기, 감정적 혼란은 모두 지수가 초래한 것이었다. 레이첼이 처음부터 지수를 원한 게 아니었다. 지수가 그것을 의도했고, 그렇게 만들었다. 계속해서 외면해 왔지만 이제는 정말 바로잡아야 했다. 도저히 입이 떨어지니 않았지만 지수는 지금 그 이야기를 털어놓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340p)
→ 레이첼과 지수의 첫 만남은, 레이첼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기로 했을 때 자신을 흔들어 깨워준 순간이었다(레이첼은 사이보그인간이다. 절반은 기계, 절반은 사람이다). 이 순간부터 레이첼은 지수에게 호기심을 느끼기 시작한다.
프림빌리지에서 최초 서로의 이익을 위해 계약관계로 시작하여 지수는 레이첼의 몸을 수리해주고, 레이첼은 지수를 통해 마을을 유지하고자 식물의 종자를 제공한다.
세월이 흐르며 점점 더 깊은 관계가 되어간다(누가 남자인지 누가 여자인지 알 수가 없다).
소설의 후반부로 갈수록 레이첼은 프림빌리지를 유지하는데 큰 관심이 없음이 느껴진다.
프림빌리지가 붕괴되길 원하지 않았던 레이첼의 의도는, 프림빌리지가 자신이 하고 싶었던 식물들에 대한 실험을 계속하기에 안정적인 장소여서가 아니었다. 단지, 프림빌리지가 해체된다면 지수와 더 이상 함께할 수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물론 레이첼은 인간이라기보단 사이보그에 더 가까운 인물이긴 하지만, 안정적으로 살아오던 자신의 주변환경이 모두 붕괴되기 직전인 상황에서도 관계(사랑일 수도, 우정일수도)를 더 우선시한다는 점이 놀라웠다.
만약 100% 사람인 내가 그 상황에 처했더라면 어땠을까.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고 소중히 하는 사람이라면 내 모든 걸 바쳐서라도 그녀를 지켜낼 자신이 있다. 나는 불타 없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녀에게는 지푸라기라도 쥐어주고 불타오르고 싶다.
⑦ "시간이 흐를수록, 모스바나가 무엇인지가 제게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지요.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에요. 저는 그냥 그곳에서의 약속을 지키고 싶었던 거예요. 프림 빌리지를 다시 만들 수 없다는 것도, 그런 곳은 오직 프림 빌리지뿐이었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해서 식물들을 심었어요. 오직 그것만이 저를 살아가게 했으니까요." (354p)
→ 나오미는 어린 시절 실험을 당하고 돔 바깥으로 버려졌었다. 그렇기에 세상으로부터 버려졌고, 버려진 우리가 이 세상을 다시 재건해야 한다는 지수의 의견에 반박한다.
지수는 돔 안와 밖의 분리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곳에서 다양한 공동체를 거쳐 살아오며 프림빌리지의 끝은 당연히 있을 것이고, 안과 밖의 경계는 결국 허구적이라 생각한다.
얼마 후, 프림빌리지에서 폭풍을 막기 위해 더스트를 응집시킬 수 있는 식물인 모스바나를 심었다. 폭풍은 막았으나 나 없이 평화로울 것 같았던 프림빌리지는 무너졌다.
나오미와 주민들은 각자 모스바나를 통해 전 세계에 또다른 프림빌리지를 건설하겠다는 소망을 갖고 흩어지게 된다.
소설 후반부에 나오는 얘기지만, 나오미와 프림빌리지의 주민들은 전국 각지로 퍼져 모스바나를 계속해서 심었고, 결국 더스트시대는 종식되어 프림빌리지와 같은 평화로운 세상이 도래하게 된다.
작고 연약한 존재들이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내 것이다.
붕괴된 프림빌리지로부터 탈출한 나오미와 주민들은 단지 '또 다른 프림빌리지'를 만들어야겠다는 일념뿐이었다. 그러한 일념이 종말직전의 세상을 구한 것이다.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건 무엇일까?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무엇일까?
희망이 보이지 않더라도,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를 저버리지 않고 계속 살아갈 수 있을까?
⑧ [작가의 말]
온실의 모순성을 좋아한다. 자연이자 인공인 온실. 구획되고 통제된 자연. 멀리 갈 수 없는 식물들이 머나먼 지구 반대편의 풍경을 재현하는 공간. 이 소설을 쓰며 우리가 이미 깊이 개입해 버린, 되돌릴 수 없는, 그러나 우리가 앞으로 계속 살아가야 하는 이곳 지구를 생각했다.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세계를 마주하면서도 마침내 그것을 재건하기로 결심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아마도 나는 그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던 것 같다. (389p)
→ 최근 양귀자 작가님의 장편소설 '모순'을 읽었다.
우리의 삶은 '모순'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삶의 목적이 행복이라면, 삶을 살아가는데 마주하는 불행이나 비극과 같은 것들은 뭐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반드시 행복이라는 목표를 이뤄내야만 의미가 있는 것일까?
짧기도 길기도 한 인생에서 더 많은 모순을 느껴보며 살아가려 한다. 사랑할 수 없는 지구를 마주하면서도 그 지구를 살려내기로 결심한 프림빌리지의 사람들처럼 말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는 동안 등장인물들의 성별이 궁금했다.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없어 읽는 내내 궁금증을 자아냈다. 내용상 소설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에는 중요하지 않은 부분이었지만 작가의 의도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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