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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를 잘하자
[독서후기 7] 이방인(알베르 카뮈 저) 본문
'이방인(알베르 카뮈 저)' 독서 후기
* 필자의 주관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ㆍ제목 : 이방인
ㆍ저자 :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ㆍ분야 : 프랑스 소설
ㆍ발행일 : 2019. 9. 2
ㆍ책 소개
20세기의 지성이자 실존주의 문학의 대표 작가, 알베르 카뮈
억압적인 관습과 부조리를 고발하며 영원한 신화의 반열에 오른 작품
1942년 『이방인』이 처음 발표되었을 때, 카뮈는 알제리에서 태어난 젊은 무명작가에 불과했다. 낯선 인물과 독창적인 형식으로 현대 프랑스 문단에 이방인처럼 나타난 이 소설은 출간 이후 한순간도 프랑스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빠진 적이 없는 걸작이 되었다. 두 차례에 걸친 세계 대전을 겪으며 정신적인 공허를 경험한 당대 독자들에게 카뮈는, “영웅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으면서 진실을 위해서는 죽음도 마다하지 않는” 뫼르소라는 인물을 통해 관습과 규칙에서 벗어난 새로운 인간상을 제시한다. 현실에서 소외되어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현대인이 죽음을 앞두고 비로소 마주하는 실존의 체험을 강렬하게 그린 이 작품은 아직까지도 전 세계 독자들 사이에서 고전 중의 고전으로 살아 숨 쉬고 있다.
민음사에서는 불문학 최고의 번역자 김화영 교수가 이십 여년 만에 원문과 가장 가까우면서도 오늘의 독자들에게 보다 친근한 언어로 “새로 번역하다시피 대폭 수정”한 원고를 ‘세계문학전집’ 266번으로 출간함으로써 『이방인』이 독자들에게 보다 깊은 감동을 전할 수 있도록 하였다.
(교보문고 제공)
ㆍ저자 소개
1913년 알제리의 몽드비에서 아홉 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노동자였던 아버지가 1차 세계대전 중에 전사한 뒤, 청각장애인 어머니와 할머니 아래에서 가난하게 자랐다. 공립초등학교와 알제대학교 철학과에서 공부한 그는 1936년에 고등교육 수료증을 받고 교수가 되려고 했지만 결핵이 재발해 단념하고, 졸업 후 진보적 성향의 일간지에서 기자 생활을 했다. 1942년 7월 존재의 부조리성(不條理性)을 다룬 《이방인(異邦人, L’?tranger)》과 동일한 주제를 철학적 에세이로 풀이한 《시지프 신화(神話)》를 발표하면서 주목받는 작가로 떠올랐고, 이어 《페스트》(1947)의 출간으로 그의 명성은 더욱 높아졌다. 1951년에는 마르크시즘에 반대하는 내용을 담은 평론 《반항하는 인간》을 발표하여 사르트르를 포함한 프랑스 문인들과 격렬한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1957년 마흔네 살의 젊은 나이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카뮈는 장편소설 《최초의 인간》 집필 작업에 들어갔으나, 3년 후인 1960년 자동차 사고로 생을 마쳤다. 그 밖의 작품으로는 《표리(表裏)》(1937), 《결혼》(1938), 《정의(正義)의 사람들》(1949), 《행복한 죽음》, 《안과 겉》, 《적지와 왕국》, 《전락(轉落)》(1956), 희곡 《오해(誤解)》(1944)와 칼리굴라(Caligula)》(1945) 등이 있다.
(교보문고 제공)
너무 늦게 읽었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알베르 카뮈의 수많은 작품들은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30세가 넘어서야 뒤늦게 독서의 재미를 알게 된 내가 부끄럽다. 아쉽게도 알베르 카뮈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고 3년 뒤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들은 왜 이렇게 빨리 우리를 떠나가는 걸까?
ㆍ독서 기간 : 2024. 5. 19(일) ~ 5. 30(목)
ㆍ평점 : 4.6 / 5
ㆍ책 내용을 요약해 본다면
→ 부조리를 경계하자. 관습에 얽매인 삶을 지양하자.
ㆍ저자가 전하는 메시지는
→ 언제나 진실된 삶을 추구하자.
ㆍ책을 읽고 생각해 볼만한 점
① 삶에서 '진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② 자신이 느끼는 날것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잘못된 태도일까?
③ 삶을 간단하게 하고자 진실을 잠시 덮어두는 행동은 바람직한가?
④ 삶을 살아가며 배우고 느끼는 것들에 대해 성찰한 경험이 있었는가?
⑤ 핵심 키워드인 죽음. 1부는 자연사와 살인이며 2부는 사형에 대한 내용이다. 죽음을 다르게 바라보는 시선들에 대한 고찰도 필요해 보인다.
ㆍ인상 깊었던 문장 필사, 그 이유(or 내 생각)
①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모르겠다. (13p)
→ 소설의 도입부이다. 원작에는 이렇게 표현되어 있다.
Aujourd'hui, maman est morte. Ou peut-être hier, je ne sais pas.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그게 어제였나. 잘 모르겠다.
책의 제목은 김화영 작가님께서 한국어로 의역하신 단어는 '이방인'이다.
이를 프랑스어로 직역하면 L'Etranger인데, 이는 Stranger와 같은 '낯선 사람'을 의미한다.
즉, 낯선 사람, 모르는 사람 등이라는 표현으로 해석될 수 있다.
소설의 도입부를 읽으면 일반적인(일반적인 게 뭔지 모르겠다만) 사람들이 접하기에 굉장히 낯선 문구다.
자신을 낳아주고 길러주고 사랑으로 키워주신 엄마가 돌아가셨는데 언제 돌아가셨는지 모른다고?
주인공 뫼르소는 내가 보기엔 상당히 낯선 사람이다. 문화의 차이를 떠나서 가족이 죽었는데 감정의 동요가 없어 보인다. 심지어 뫼르소는 장례식장에서도 담배를 피우고 커피를 마시며 무덤덤한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모습들이 후반부 재판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제목처럼 뫼르소는 낯선 사람이다. 즉 이방인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낯설다는 것은 비교군이 있어야 낯설 수 있다. 통상 낯설지 않다는 것은 익숙하다는 것이고, 낯설다는 것은 익숙하지 않다는 것이다.
익숙하다는 건 관습과도 같다. '관습'이라는 것은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 이 역시 편견이 아닐까?
우리는 일반적으로 관습에 어긋나는 사람들은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주인공 뫼르소가 2024년 현재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엄청난 질타를 받았을 것이다. 물론 소설 속 시대배경에서도 그렇지만.
이는 진실을 숨기게 만드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뫼르소는 진실을 숨기지 않는다. 느끼는 감정에 충실하고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즉, 목에 칼이 들어와도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진실을 원할까? 진실을 마주했을 때의 여파를 감당할 수 있을까?
② 나는, 삶이란 결코 달라지는 게 아니며, 어쨌건 모든 삶이 다 그게 그거고, 또 나로서는 이곳에서의 삶에 전혀 불만이 없다고 대답했다. (57p)
→ 뫼르소가 다니는 회사의 사장은 파리에 사무실을 열어 현지에서도 사업을 시작할 계획이 있다고 한다. 동시에 뫼르소로 하여금 파리로 가서 일할 생각이 있느냐는 물음에 뫼르소는 위처럼 대답한다.
앞서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에도 뫼르소는 결국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뫼르소는 '자신'을 중심으로 사고하고 행동한다. 그렇기에 외부에서(내면이 아닌 외면)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이 없다. 모든 삶은 그게 그거라고, 삶은 달라지는 게 아니라고 말하는 점에서 유추해 볼 수 있다.
삶에 불만이 없는 뫼르소는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다.
전 직장 동료 마리를 만나 데이트를 하고 사랑을 나누며, 같은 건물에 사는 레몽을 만나 시간을 보낸다. 레몽과 친구가 된 뫼르소는 레몽의 권유로 알제리 근처의 별장으로 초대를 받게 되고, 레몽의 친구 마송이 살고 있는 별장에 놀러 가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레몽의 전여자 친구와 얽힌 아랍인들이 그들을 미행하고 결국 싸움을 벌인다. 싸움 도중 아랍인들은 칼을 휘두르게 되고, 뫼르소 일행은 크게 다친다.
후에 뫼르소는 혼자 아랍인들이 있던 곳으로 간다. 휴식을 취하던 아랍인들을 발견한다. 아랍인들이 꺼낸 칼날에 비친 태양빛은 뫼르소에게 상당히 고통스러웠다.
'그 불타는 칼은 내 속눈썹을 쥐어뜯고 고통스러운 두 눈을 후벼 팠다. 모든 것이 기우뚱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바다가 무겁고 뜨거운 바람을 실어 왔다. 하늘 전체가 갈라지면서 불비가 쏟아지는 것 같았다.'
이러한 감정을 느낀 뫼르소는 레몽에게 받은 권총으로 아랍인을 쏴서 죽인다. 1번 쏜 후, 움직이지 않는 몸에 4번의 총알을 더 박는다.
낯설었다. 너무 낯설었다. 편견이라고 생각하기엔 인정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이게 뫼르소가 말하는 진실인가? 통제가 되지 않는 삶. 감정에 1차원적으로 충실한 삶이 옳은 삶인가?
③ 그러나 평범한 사람이 갖춘 장점이 어떻게 그를 죄인으로 모는 명백한 기소 사유가 될 수 있는 것인지는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122p)
→ 재판에서 검사는 배심원들에게 강조한다. 뫼르소는 똑똑하다고. 대답할 줄 안다고.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르고 행동했다고 할 수 없다고.
뫼르소의 입장에서는 검사의 질문에 솔직하게 답한 것 밖에 없다. 즉, 거짓말을 하지 않고 자신이 느낀 감정과 경험을 꾸며내지 않고 이야기한다. 이를 '평범한 사람이 갖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아직까지 뫼르소는 내게 낯설고 무서운 존재다.
주목해야 할 부분이 한 가지 더 있다. 뫼르소는 살인을 저질렀다. 피해자는 아랍인이다. 그러나 재판과정 그 어디에서도 아랍인은 언급되지 않고, 함께 있던 아랍인 동료들도 등장하지 않는다. 변호사, 검사, 판사 모두 종교적 압력과 그들의 사상을 단지 문제의 종결을 위해 주입시키고 강요한다.
뫼르소는 이 역시 이해하지 못한다. 즉, 진실이 아닌 부분들, 이런 부조리들에 대해 전혀 고개를 숙일 생각도 의지도 없다. 또한 재판 과정상 뫼르소는 화도 내지 않고, 딱히 별로 자신의 주장도 하지 않는다. 단순히 질문에 예/아니오의 대답만 할 뿐이다. 그렇기에 재판은 뫼르소를 어렵지 않게 죄인으로 몰아간다.
잘못된 관습이 이뤄낸 결과물이다. '부조리'라고 보인다.
뫼르소는 결국 사형판결을 받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감될 때까지 그는 담담하다. 소설의 도입부부터 계속.
이 '재판'에 관한 내용은 소설이 끝난 후 작품에 대한 설명 부분에서도 자세하게 언급된다.
④ 그때,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내 속에서 뭔가가 폭발해 버렸다. 나는 목이 터져라 고함을 치기 시작했고 그에게 욕설을 퍼부었고 기도하지 말라고 말했다. (145p)
→ 소설의 맨 마지막 부분이다. 수감생활을 하며 사제와 지속적으로 만남을 갖던 뫼르소가 드디어(?) 감정적으로 흥분하며 포효하는 부분이다.
소설의 시작부터 후반부까지 뫼르소는 동요하지 않는다. 삶은 거기서 거기이며 자신이 생각하는 삶의 가치를 평소에도, 재판장에서도 거짓 없이 주장한다.
그러나 사형선고를 받고 자신의 죽음을 눈앞에 앞둔 시점에 실존을 깨닫게 된다.
지금까지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의미가 없다고 표현했던 것들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포효한다.
기쁨과 분노가 뒤섞여 솟구쳐 오른다고 표현하는 뫼르소는 사형 집행을 앞두고 어떤 생각이었을까?
우리도 무언가를 깨닫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마다 깨닫기 전의 자신에 대해 후회하며 반성하곤 한다. 그러나 뫼르소는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 같지는 않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것들에 대해 굽히지 않고 살아왔다는 만족감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우리는 그렇게 살 수 있을까? 깨달음이 있기 전의 나도 온전한 '나'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매 순간 굳은 신념이 있어야 할 것이고, 그 신념 역시 '나'로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깨달음의 영역은 개선의 영역일 수도, 부가의 영역일 수도 있다.
⑤ 삶은 어떤 기나긴 재판입니다. '재판하지 말라'라는 계명은 법정들과만 관련된 것이 아니고 일상생활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 뫼르소는 그의 사형이 집행될 때 그를 맞아 주게 될 증오의 외침 소리에서 어떤 해방감 같은 것을 맛보게 되기를 꿈꾸는 것입니다. 이는 반항과 항의의 목소리인 동시에 간접적인 용서의 교훈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175p)
→ 1992년, 로제키요가 '이방인 50주년 기념 논문'에서 언급한 문장이다. 이방인은 절반은 소설로, 절반은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 해설과 사색으로 이루어져 있다. 로제 키요는 이방인의 원본 편집자이다. 그만큼 원초적이면서도 알베르 카뮈의 의도에 충실한 사람이지 않을까 싶다.
알베르 카뮈는 반항한다. 세상에 반항하고, 부조리에 반항한다. 그러나 이러한 부조리를 고발함과 동시에 부조리는 어쩔 수 없으니 이를 받아들이자는 생각을 갖고 있다.
알베르 카뮈의 '반항인' 역시 굉장히 유명한 소설이다.
'나는 반항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존재한다'
숙명적인 부조리에 반항하는 카뮈의 사상을 조금 더 알아보고 싶어졌다. 이런 부조리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세상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며, 이 세상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어떤 삶의 방식을 취해야 하는지.
⑥ 인간은 모두 다 사형수다. 삶의 끝에서 기다리고 있는 죽음의 확신이 인간을 사형수로 만들어 놓는다. 인간은 반드시 죽는 운명에 처해져 있는 것이다. 사형수는 죽음과 정대면함으로써 비로소 삶의 가치를 깨닫는다.
필연적인 죽음의 운명 때문에 삶은 의미가 없으므로 자살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 한정된 삶을 더욱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 (22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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