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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를 잘하자
[독서후기 13-①] 쇼코의 미소(최은영 저) 본문
'쇼코의 미소(최은영 저)' 독서 후기(1편 ~ 3편)
* 필자의 주관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ㆍ제목 : 쇼코의 미소
ㆍ저자 : 최은영
ㆍ분야 : 한국소설
ㆍ발행일 : 2019. 6. 20
ㆍ책 소개
서로에 대한 마음의 ‘기댐’과 ‘기댐 받음’의 연쇄가 갖고 있는 힘을 믿는 이야기를 만나다!
최은영의 첫 소설집 『쇼코의 미소』. 2013년 겨울 《작가세계》 신인상에 중편소설 《쇼코의 미소》가 당선되어 등단, 그 작품으로 다음해 젊은작가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최은영이 써내려간 7편의 작품을 수록한 소설집이다. 사람의 마음이 흘러갈 수 있는 정밀한 물매를 만들어냄으로써, 우리들을 바로 그 ‘사람의 자리’로 이끄는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서로 다른 국적과 언어를 가진 두 인물이 만나 성장의 문턱을 통과해가는 과정을 그려낸 표제작 《쇼코의 미소》, 베트남전쟁으로 가까운 사람이 죽어나가는 것을 그저 바라봐야만 했던 응웬 아줌마와 '나'와 엄마의 이야기를 그린 《씬짜오, 씬짜오》, 프랑스의 한 수도원에서 케냐 출신의 청년 한지와 만나게 된 영주의 이야기를 담은 《한지와 영주》 등 맑고 투명한 그 목소리로 타박타박 담담하게 이어지는 소설들을 만나볼 수 있다.
(교보문고 제공)
ㆍ저자 소개
삼색 고양이의 날에 태어나 삼색 고양이와 고등어 고양이와 함께 사는 소설가. 타고난 집순이지만 매일 장기간의 세계 일주를 꿈꾼다. 여행, 글쓰기, 고양이, 바다, 친구, 잠을 좋아한다. 콤플렉스와 약점이라고 여겼던 것들의 힘으로 살아가고 있다.
1984년 경기 광명에서 태어났으며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2013년부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지은 책으로 소설집 『쇼코의 미소』 『내게 무해한 사람』, 장편소설 『밝은 밤』이 있다.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허균문학작가상, 김준성문학상, 이해조소설문학상, 구상문학상 젊은작가상, 한국일보문학상, 대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YES24 제공)
ㆍ구성
1) 쇼코의 미소 · 007
2) 씬짜오, 씬짜오 · 065
3)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 095
4) 한지와 영주 · 123
5) 먼 곳에서 온 노래 · 183
6) 미카엘라 · 213
7) 비밀 · 243
ㆍ독서 기간 : 2024. 9. 14(토) ~ 10. 31(목)
→ 기존 책들에 비해 독서 기간이 매우 길었다. 필자는 9월 초, 다니던 직장을 퇴직하고 쉼의 시간을 보내다 10월에 새로운 회사에 정착하여 근로자의 삶을 다시금 보내고 있다. (핑계지만, 정말 핑계지만) 새로운 회사에서의 적응이 필요한 탓에 독서에 집중하지 못했다. 반성하는 부분이다.
ㆍ평점 : 4.2 / 5
ㆍ줄거리 & 느낀점 및 인상 깊었던 문장 필사
(1. 쇼코의 미소 ~ 3.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 이 책은 최은영 작가가 2014년 젊은 작가상 심사에서 신인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총 7편의 중단편 소설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작품별로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은 메시지는 상이하나, 내가 느낀 것은 각 작품마다 등장인물들에 대한 감정의 변화를 담담하게, 그러나 너무 얕지는 않게 표현되어 예상했던 것 보다 더 먹먹해지는 기분이었다.
각 작품별로 사견을 붙이고 싶은 부분이 너무 많지만.. 누구나 그렇듯 혼자서만 생각하고 싶은 부분이 있어 그런 부분은 주머니에 잠시 넣어두겠다. 언젠간 이 생각들을 꺼내고 싶은 날이 오겠지.
1) 쇼코의 미소
한국에 교환학생 자격으로 홈스테이를 온 일본 여고생 쇼코와, 한국 여고생 소유 사이에서의 감정선 변화를 그려낸 작품이다. 본가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산다는 공통점이 있는 쇼코와 소유는, 소유의 집에서 함께 사는 이모, 할아버지와 함께 지내며 밝은 나날을 보낸다.
시간이 지난 후 쇼코는 일본으로 돌아가게 된다. 누구나 그렇듯 처음에는 편지도 주고받으며 깊은 관계를 유지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현실에 치여 서로 소원하게 되고, 아름다웠던 추억은 그 시절에 느꼈던 감정만큼이 아닌 옅어진 감정이 된다. 시간이 지나고 그 시절을 복기해 보며 복잡한 감정을 느끼는 소유. 마지막 부분에 쇼코와 다시 만난 후 느끼는 소유의 후회, 사랑, 우정과 같은 감정들을 담담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① 영화 일이 꿈이었다면, 그래서 내가 꿈을 좇았다면 나는 적어도 어느 부분에서는 보람을 느끼고 행복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단지 감독이 되겠다는 나 자산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마음에도 없는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들었다. 나 자신도 설득할 수 없는 영화에 타인의 마음이 움직이기를 바라는 건 착각이었다. (24p)
→ 소유는 쇼코를 만나러 도쿄로 갔다. 퓨즈가 나가있는 것 같은 쇼코. 소유도 알고 있었지만 쇼코의 할아버지는 몸이 좋지 않으셔서 쇼코는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병간호를 해야 했다. 쇼코는 그런 할아버지를 증오하지만, 증오할수록 벗어날 수 없게 된다며 그녀가 지향하는 삶을 내려놓은 듯 보인다. 쇼코가 느끼는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소쿄의 언행에 실망하며 소유는 급하게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시간이 흐른 후, 쇼코의 모습이 눈앞에 언뜻언뜻 스치는 소유. 쇼코가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은 형편없는 선택이고, 자신은 남들과는 다른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던 소유.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는 하는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을 보며 그들로부터 우월감을 느끼는 소유. 그러나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고자 노력하지만 현실의 벽에 한계를 느끼고 순응하는 소유.
우리 모두가 한번씩은 겪어본 감정이 아닐까 싶다. 누구나 지향하는 바는 있다. 이상적인 상황과 상태를 바란다. 그러나 현실은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소유가 이를 쇼코를 만났던 시점부터 느꼈더라면, 쇼코도 자신이 순응하고 싶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는 걸 이해했더라면 이야기는 다르게 흘러갔을 텐데 생각해 본다.
후에 결국 쇼코는 유명한 병원의 물리치료사가 되었다는 사실을 할아버지로부터 전해 들은 소유. 그 순간 소유가 느끼는 감정은 어떤 감정이었을까.
② '날 용서해 주기를 바라는 건 아니야. 그냥 내 마음 편하려고 이런 편지를 썼다고 욕해도 좋아. 사실 그렇기도 하니까. 이제 조금은 내 마음이 편해지기를 바라. 종종 편지할게. (43p)
→ 비 오는 날, 비를 맞으며 소유를 찾아온 할아버지. 싫지만 싫지 않은 할아버지를 보고 눈물을 흘리는 소유. 이 부분에서도 가슴이 먹먹했지만 쇼코가 소유에게 쓴 편지 부분에서도 비슷한 먹먹함을 느꼈다.
쇼코를 보기 위해 일본에 갔던 소유. 그러나 소유는 쇼코의 상황을 자세히 모른 채 그녀의 언행만 보고 실망하여 급하게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쇼코는 소유가 찾아왔을 시점의 전후 상황을, 그리고 쇼코 자신이 느꼈던 감정들과 말하고 싶었던 것들을 편지에 눌러 담았다. 쇼코는 편지 말미에 내 마음 편하려고 이련 편지를 썼다고, 욕해도 좋다고, 사실 그렇다고 적었다.
이 편지를 쓸 때 쇼코는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생각해 봤다. 억울함, 미안함, 후련함, 창피함.. 이런 감정들이 아니었을까. 이런 감정들을 털어버리기 위해, 그리고 소유와 다시 예전처럼 돌아가기 위해 편지를 쓴 게 아닐까.
내 마음 편하자고 했던 일들이 나뿐만 아니라 주위에도 좋은 영향을 주는 경우가 많다. 물론 반대도 있겠지만, 긍정적인 부분에서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기도, 오해가 풀리기도, 관계가 더 깊어지기도 한다.
상대방을 위하는 마음이 있어야 쇼코처럼 편지를 쓸 수 있는 것 같다. 상대를 생각도 안 하고 있다면 내 마음이 불편하지도 않을 테니.
+) 주인공의 이름은 소유(所有)다. 의미가 있는 작명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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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신짜오, 신짜오
'신짜오'라는 말은 베트남어로 '안녕하세요(Xin chào)'이면서도, 중국어로는 '마음으로 이해하다(心照)'라는 뜻을 갖고 있다고 한다.
이 작품을 읽기 전에는 신짜오의 중국어 의미를 전혀 몰랐었다. 읽고 난 후 서칭을 통해 의미를 알게 되었는데 최은영 작가가 왜 제목을 신짜오로 지었는지 이유를 알 것 같다.
1995년 1월. 주인공은 베를린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지 1년 만에 다시 독일의 작은 도시 플라우엔으로 이사를 가게 된다.
플라우엔으로 이사간지 3개월 만에 처음으로, 주인공 가족은 호 아저씨와 응웬 아줌마의 초대를 받아 저녁 식사를 하게 된다(주인공의 아버지와 호 아저씨는 직장 동료이고, 주인공과 호 아저씨의 아들 투이는 같은 반 학우다). 두 가족은 이를 시작으로 두 가족 모두에게 낯선 땅인 독일에서 한 가족처럼 지내기 시작했다.
평생 화목하고 행복할 것만 같았던 두 가족은, 주인공이 학교에서 2차 세계대전에 대해 배우던 시간에 투이의 발언으로부터 작디작은 불씨가 피어오르게 된다.
'베트남에서 전쟁으로 사람들이 많이 죽었어요. 저희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 이모, 삼촌 모두 다 죽었대요. 군인들이 와서 그냥 죽였대요. 아이들도 다 죽였다고. 마을이 없어졌다고 했어요. 저희 엄마가 얘기하는 걸 들었어요."
그날 저녁, 주인공 가족은 투이네 집에서 국수와 만두를 먹고 있었다. 대화 주제가 일본의 식민통치로 이어질 때, 주인공은 "한국은 다른 나라를 침략한 적 없어요"라고 말한다.
엄마와 아빠, 호 아저씨는 주인공의 말을 애써 무시하지만 주인공은 억울한 마음에 다시 한번 말하게 된다. 한국은 선한 나라라고.
그 순간 투이가 말한다. "한국 군인들이 죽였다고 했어."
주인공의 엄마는 진심으로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고, 응웬 아줌마가 겪었던 일을 잘 모르지만 그래도 사과를 하게 된다.
그러나 아빠의 발언으로부터 앞서 피워진 불씨가 큰 불로 번지기 시작한다.
왜 우리가 잘못했다고 말해야 하냐고. 자신의 형도 용병으로 그 전쟁에 참여해 순직했다고.
응웬 아줌마는 그 시절 모든 사건을 직접 겪은 당사자이다. 그런 그녀에게 주인공 가족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은 듣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차라리 입을 닫고 있길 원했을 것이다.
이날 이후, 두 가족은 함께 있어도 함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응웬 아줌마는 그 시간을 견디고 있었다.
그렇게 두 가족은 모르는 사이보다도 못한 사이가 되었다.
늘 투이네 가족과 함께 하던 토요일 저녁시간은 주인공 가족끼리 어색하게 앉아 텔레비전을 보는 시간으로 변했다.
주인공 가족은 한 달 뒤면 한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주인공의 엄마는 가기 전 주인공에게 자신이 직접 뜬 목도리, 털모자, 털장갑을 주인공을 통해 응웬 아줌마에게 전달해 준다.
시간이 지난 후, 주인공의 엄마가 소천하신 다음 해에 주인공은 플라우엔을 찾아간다. 주인공은 응웬 아줌마와 연락이 닿아 그 집에 찾아가게 되고, 현관으로 나오는 응웬 아줌마는 빨간 털모자를 쓰고 있었다.
주인공과 응웬 아줌마는 몇 번이나 신짜오. 신짜오. 인사를 반복한다. 다른 말은 모두 잊은 사람들처럼 말이다.
개인적으로 7개의 작품 중에 신짜오. 신짜오. 이 작품이 내겐 제일 인상 깊었던 작품이고, 가장 높은 평점을 주고 싶은 작품이다. 나도 모르게 줄거리를 다른 작품에 비해 한번 더 곱씹고, 보다 자세히 적고 있는 나를 보면서 느꼈다.
①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투이의 유치한 말과 행동이 속깊은 애들이 쓰는 속임수 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그런 아이들은 다른 애들보다도 훨씬 더 전에 어른이 되어 가장 무지하고 순진해 보이는 아이의 모습을 연기한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통해 마음의 고통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각자의 무게를 잠시 잊고 웃을 수 있도록 가볍고 어리석은 사람을 자처하는 것이다. 진지하고 냉소적인 아이들을 어른스럽다고 생각했던 그때의 나는 투이의 깊은 속을 알아볼 도리가 없었다. (85p)
→ 과거의 누군가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어른스럽고 지혜로웠다고 후에 스스로 깨닫게 된다면, 과거의 '누군가'보다 현재 시점에서 무엇인가를 깨닫게 된 '자신'이 더 어른스러워진 것이고 더 지혜로워졌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누군가의 언행이 의도된 언행일지라도, 의도된 언행이 아닐지라도 무엇인가를 느끼고 깨닫는 시점의 자신을 잘 기억하고 그때의 감정을 오래 유지해야 한다.
과거의 필자는 개인적으로 사소한 것에 의미 부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상황에 대해 의미를 부여할 만큼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현재의 필자는 사소한 것에 의미를 부여하려 한다. 대신,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의미 부여하고 스스로 깨닫고, 이를 통해 조금 더 성장하고 지혜로워지려 노력한다.
무엇인가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는 자신이 옳다고 남들에게 강요하거나 이해시키려 하는 행동은 잘못된 행동이다. 스스로 느끼고 배우고 성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상황에서든.
② 시간이 지나고 하나의 관계가 끝날 때마다 나는 누가 떠나는 쪽이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생각했다. 어떤 경우 나는 떠났고, 어떤 경우 남겨졌지만 정말 소중한 관계가 부서졌을 때는 누가 떠나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알 수 없었다. 양쪽 모두 떠난 경우도 있었고, 양쪽 모두 남겨지는 경우도 있었으며, 떠남과 남겨짐의 경계가 불분명한 경우도 많았다. (89p)
→ 하나의 관계가 끝날 때마다 누가 떠나는 쪽이고 누가 남겨지는 쪽일까. 생각보다 너무나 깊지 않은 관계에서는 누가 남겨지고 누가 떠나는 쪽인지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아도 느껴지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주인공과 투이 가족처럼 너무나도 소중했던 관계가 부서졌을 때는 떠나는 쪽과 남겨지는 쪽이 누군지 판단하기 어렵다. 아니, 판단하지 않는다. 단지 '헤어짐'에 집중할 뿐이다.
소중한 관계를 떠나보냈던 경험은 누구나 한번쯤 있을 것이다. 소중한 가족, 오랜 친구 등 그 당시에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던 관계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그 시절의 감정에서 점점 더뎌지는 경우가 많다. 매일 생각하던 관계를, 마음속 머릿속 깊은 곳에 단단하게 묻어두고 생각날 때마다 꺼내보는 것처럼 말이다.
다시 한번 모든 관계를 소중히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관계가 단절되더라도 떠남과 남겨짐의 경계가 불분명할 만큼.
③ 아줌마의 눈에서 나는 나와 함께 여기에 서 있는 엄마를 본다. 응웬 씨, 반갑게 이름 부르며 저쪽 길로 건너가는 엄마의 모습을. 신짜오, 신짜오. 우리는 몇 번이나 그 말을 반복한다. 다른 말은 모두 잊은 사람들처럼.
→ 내가 주인공이었다면 어떤 기분이었을지 생각해 본다. 다양한 감정들로 인해 가슴이 먹먹해진다.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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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언니, 나의 작은, 순애언니
이 작품의 화자는 엄마(해옥)의 자식(딸인지 아들인지 알 수 없다)으로 보인다. 화자 입장에서의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서술되기에 엄마와 이모의 깊은 내면에 대한 구체적인 서술이 등장인물들의 관계와 감정을 어려움 없이 이해할 수 있게 한다.
간략한 줄거리로는,
화자의 할머니는 옷 수선집의 일을 도와줄 어린 여자애를 찾다가 서울에서 일자리를 구하고 있던 순애이모를 부른다. 할머니의 딸. 화자의 엄마인 해옥은 순애 이모를 언니라 부르며(친언니는 아니다) 친언니와 같은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순애 이모는 엄마의 친구 난이의 오빠와 결혼을 했고, 결혼 후 아기가 생겼으나 행복도 잠시, 순애 이모의 남편이 간첩으로 몰리게 되어 징역을 살게 된다. 남편이 교도소에 있는 동안 혼자 아이를 기르고, 점점 불행해지는 순애이모를 엄마 해옥은 멀리하게 된다.
심지어 순애 이모를 해옥의 언니로 만들어준 할머니도 순애 이모를 가족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할머니는 나라에서 순애 이모의 남편을 간첩이라고 했으니 남편은 간첩인 것이고, 가족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으며, 앞으로 볼일 없는 사이라고 말한다.
순애 이모의 남편이 출소한 후 엄마 해옥은 순애 이모를 찾아간다. 통닭 한 마리를 사들고.
순애 이모와 이모의 딸이 통닭을 형부의 입에 가져다주는 순간, 형부의 오줌이 엄마 해옥의 손가락, 스타킹, 원피스를 적셨다. 모진 고문들로 인해 정신이 온전치 못한 형부의 행동에 순애 이모는 몇 번이고 엄마 해옥에게 미안하다며 사과한다. 동시에 오랜만에 방문한 엄마 해옥에게 그만 가보라고 말한다.
가려는 엄마 해옥에게 순애이모는 항상 이런 건 아니라고, 항상 이렇게 사는 것은 아니라고. 잘 살라고 말한다.
뭍에 걸린 배를 호수로 밀어내듯이.
시점이 작품 초반에 순애이모가 엄마 해옥의 병실을 찾아온 시점으로 돌아오며 작품은 마무리된다.
나로서는 절대 상상할 수도 없는, 공감할 수도 없을 정도의 상처를 입은 사람들을 배려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나에겐 평범한 하루가 그들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것 일수도, 기만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① 곰의 이야기를 들을 때 엄마는 곰이 되어서 곰에게 이야기하는 이모의 모습을 봤다. 곰아 밥 먹어. 그 말을 하고 엉엉 우는 이모의 모습을 바라봤다. 곰의 마음으로 이모를 바라보면 이모는 세상 누구보다 귀한 사람이었다. 엄마는 그 후로도 죽은 개의 마음으로 이모를 바라보곤 했다.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모두를 잃고 나서도 더 잃을 것이 남아 있던 이모의 모습을. 엄마는 이모를 사랑했다. (100p)
→ 순애 이모는 일이 고되거나 힘든 날에는 고향에서 키우던 개 이야기를 엄마에게 해주곤 했다. 전쟁이 끝나고부터 함께 살았던 곰이라는 개 이야기이다.
곰 입장에서 이모를 바라보는 엄마. 얼마나 귀중하고 안쓰럽고 사랑스러웠을까.
전쟁으로 인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가족들을 잃고도 더 잃을 것이 남아 있는 이모의 보는 엄마 해옥의 기분은 어땠을까.
사랑받아 마땅한 순애 이모가 후에 처절한 삶을 살게 되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는 엄마 해옥의 가슴은 얼마나 아렸을까.
② 사실 엄마는 행복한 편이었지만 조금이라도 그 행복을 드러냈다간 이모가 박탈감을 느낄 것 같아서 그렇게 말했다. 엄마는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런 태도가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을 기만하는 짓이라는 걸 깨달았다. (113p)
→ 나의 행복한 순간과 평범한 일상들, 나의 불만들, 나의 불행들은 타인에겐 행복일 수 있다고 다시금 깨달았다. 엄마 해옥이 겪는 고난은 순애 이모가 겪는 고난에 비해서는 정말 작은 것이었다.
순애 이모를 배려하고자 엄마 해옥은 자신의 행복을 감추고 힘듦만을 내세우지만, 이게 순애 이모를 위한 '진짜' 배려가 아님을 엄마 해옥은 깨닫게 된다.
이러한 관계가 지속되면 결국 서로 관계는 서먹해지고 솔직하지 못하게 된다. 순애 이모와 엄마가 그랬듯이.
살다 보면, 서로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했던 태도가 서로의 사이를 멀어지게 하는 경우가 있다. 함께 지내왔던 시간과 마음들이 무색할 정도로.
나이를 먹어가면서 가장 어려운 것이 관계의 시작임을 한번 더 느낀다. 어린 시절에는 비교적 쉽게 진입할 수 있었던 관계의 첫 장 조차도 제대로 넘기기 어렵다. 서로 상처를 입히지 않을 사람들을 만나 얕은 관계의 끈을 붙잡고 있는 나를 보며 이 관계들이 얼마나 오래 가려나 싶기도 하다.
③ 크게 싸우고 헤어지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주 조금씩 멀어져서 더 이상 볼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더 오래 기억에 남는 사람들은 후자다. (115p)
→ 크게 싸우고 헤어지는 경우 함께한 시간과 쌓아온 추억은 뒷전이게 된다. 그러나, 나도 모르게 조금씩 멀어져 더이상 볼 수 없는 관계는 함께한 시간과 추억이 소중하고 값지기 때문에 빈자리가 더더욱 크게 느껴진다.
기회가 된다면 관계를 회복하고 싶기도 하다(회복이란 표현보단 재개라는 표현이 맞을 듯싶다).
작품의 마지막에 엄마는 이모에게 용서받았다고 확신했다. 내가 생각했을 때는 엄마는 오랫동안 이모에게 용서받고 싶어 했던 것 같다. 아주 조금씩 멀어져 더 이상 볼 수 없는 이모로부터 말이다.
순애 이모가 죽고 난 후, 이모의 딸이 이모의 유품을 전해주기 위해 엄마를 찾아왔다. 이모의 가죽지갑 안에는 어린 시절 순애 이모와 엄마 해옥이 함께 찍은 사진이 들어있었다.
엄마는 '언니, 나의 작은, 순애언니'라고 조용히 속삭인다.
필자는 T라(?) 눈물이 나진 않았지만 가슴이 먹먹해지는 결말이었다. 나도 누군가에게 이런 소중한 사람이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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