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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를 잘하자
[독서후기 1] 싯다르타(헤르만헤세 저) 본문
'싯다르타(헤르만 헤세 저)' 독서 후기
* 필자의 주관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ㆍ제목 : 싯다르타(Siddhartha)
ㆍ저자 : 헤르만헤세(Hesse, Hermann)
ㆍ분야 : 고전소설
ㆍ발행일 : 2002. 1. 20
ㆍ책 소개
'수레바퀴 아래서', '데미안' 등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헤르만 헤세의 소설. 유복한 바라문 가정에서 태어난 주인공 싯다르타는 모든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존재이다. 그는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원천이지만 자기 스스로에게는 기쁨을 주지 못한 채 내면에 불만의 싹을 키우기 시작하고, 결국 친구 고빈다와 함께 집을 떠나 사문 생활을 시작하는데... 동서양의 정신적 유산을 시적으로 승화시킨 일종의 종교적 성장소설이다.
(교보문고 제공)
ㆍ저자 소개
저자 헤르만 헤세는 1877년 독일 남부 칼브에서 선교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시인이 되고자 수도원 학교에서 도망친 뒤 시계 공장과 서점에서 견습사원으로 일한다. 열 다섯 살 때 자살을 기도해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등 질풍노도의 청소년기를 보낸다. 이십대 초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 '페터 카멘친트', '데미안' 등을 발표한다. 서른 세살이 되는 해 인도 여행을 감행. 이 경험을 바탕으로 '인도 기행'을 쓴다. 스위스 베른으로 이주, 1914년 1차 세계대전을 맞는다. 군 입대를 자원하나 부적격 판정을 받고 독일 포로 구호 가구에서 일하며 전쟁 포로들과 억류자들을 위한 잡지를 발행한다. 이후 정치적 논문, 경고문, 호소문 등 전쟁의 비인간성을 고발하는 글들을 발표하는 한편, 이상 사회의 실현을 꿈꾸며 다양한 소재의 동화를 집필하기도 한다. 계속해서 '싯다르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동방순례', '유리알 유희' 등 세계 독자들을 매료하는 작품들을 발표, 1946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다. 1962년 8월 제2의 고향 몬타뇰라에서 영면.
(교보문고 제공)
ㆍ독서 기간 : 2024. 1. 15(월) ~ 1. 19(금)
ㆍ평점 : 4.2 / 5
ㆍ책 내용을 요약해 본다면
→ 진리는 가르치거나 말로 할 수 없다.
ㆍ저자가 전하는 메시지는
→ '가르침'은 의미가 없다. 직접 느끼고 일체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ㆍ책을 읽고 생각해 볼만한 점
① 진정한 '나'는 무엇인가?
② 진정한 '스승'은 누구인가?
③ 위인들의 가르침은 진정한 가르침일까?
④ '고타마 싯다르타'가 아닌, 세존 고타마를 부처로, 싯다르타를 사문으로, 별개로 설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⑤ 강의 소리를 듣는다는 것, 자연의 소리는 무궁무진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⑥ 남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하는 것은 강요일 수도 있지 않을까?
⑦ 반드시 경험을 통해서만 진정한 배움이 이뤄질 수 있는가?
ㆍ인상 깊었던 문장 필사, 그 이유(or 내 생각)
① 싯다르타는 내면에 불만의 싹을 키우기 시작하였다. 그는 아버지나 어머니의 사랑, 또한 친구인 고빈다의 사랑도 언제나 그리고 영원토록 자신을 행복하게 하여 주지도, 자신을 달래주지도, 자신을 흡족하게 하여 주지도, 자신을 만족시켜 주지도 못하리라는 것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16p)
→ 싯다르타는 바라문의 가르침을 따르며 모든 사람들에게 즐거움의 원천이 되었다. 그러나 자신 스스로에게는 기쁨을 주지 못하였고, 스스로에게는 즐거움의 원천이 되지도 못하였다. 우선적으로 바라문들의, 그리고 존경할만한 아버지 가르침(지식)들은 자신이 찾고자 하는 진정한 자아, 즉 '옴'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게 아닐까. 이 시점부터 공허함을 느끼기 시작했고 그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아버지, 그리고 죽마고우 고빈다를 뒤로하고 '일단' 무작정 떠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이런 용기와 결단력이 존경스럽다.
② 그것을, 그러니까 바로 자기 자신의 자아 속에 있는 근원적인 샘물을 찾아내어야만 하며, 바로 그것을 자기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 밖의 다른 모든 것은 탐색하는 것이요, 우회하는 길이며, 길을 잃고 방황하는데 불과하다. (20p)
→ 이것이 싯다르타의 고뇌와 목마름이었다. 공허함, 그리고 이런 목마름을 시발점으로 그는 사문이 되기로 결심한다. 자아 속에 있는 근원적인 샘물을 찾아내어 자기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 그 이외의 모든 것들은 방황하는데 불과하다는 것. 여기서 근원적인 샘물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겐 무엇일까. 개개인의 샘물의 크기와 농도와 색은 다르겠지만, 중요한 것은 그 샘물을 찾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찾았다 한들, 자기 자신의 것으로 만든 사람은 얼마나 될까?
③ 싯다르타 앞에는 한 목표, 오직 하나뿐인 목표가 있었으니, 그것은 모든 것을 비우는 일이었다. 갈증으로부터 벗어나고, 소원으로부터 벗어나고, 꿈으로부터 벗어나고, 기쁨과 번뇌로부터 벗어나 자기를 비우는 일이었다. (29p)
→ 싯다르타는 고빈다와 함께 사문들을 따라나섰고, 거지와 같은 행색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여자들을, 장사꾼들이 장사하는 것을, 제후들이 사냥하러 가는 것을, 창녀들이 몸을 파는 것 등을 경멸하고 멸시했다. 이런 것들은 악취를 풍기고 쓴맛이 난다고 말하며 세상은 끝없는 고통이라 생각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도 느꼈지만, 중요한 것은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사랑을 줄 수 있고, 고통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고통을 다룰 수 있을까?(결국 싯다르타는 후반부에 모든 것을 경험한 후에서야 깨닫게 된다.)
④ 여러 가지 수행을 하는 도중에 그리고 침잠 상태에서 다만 잠시 동안 마비 상태를 체험하였을 뿐, 마치 자궁 속에 있는 어린아이처럼, 지혜로부터, 해탈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기는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바로 그 사실을 나는 알고 있어, 오 고빈다, 그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는 말이야. (35p)
→ 싯다르타는 사문생활을 하며 수행을 하고, 가르침을 수없이 받아도 이런 방식으로는 '해탈'과 가까워질 수 없다고 확신한다. 현재 밟고 있는 길이 올바른 길인지 끊임없이 의심한다. 친구 고빈다는 끊임없는 수행과 가르침이 자신을 열반에 다다르게 할 것이라고 하지만, 싯다르타는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네 삶과 다르지 않다고 보인다. 누군가는 내가 가는 길이 옳은 길인지 의심하고, 누군가는 내가 가는 길이 옳다고 굳게 믿는다. 우리는 단적으로 후자에게 더 매력을 느낀다. 확신이 있는 사람은 '가능성'이 있는 사람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자신의 길이 옳은 길인지 의심하는 사람이 '가능성'이 더 큰 사람이 아닐까?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나는 싯다르타인가, 고빈다인가, 모르겠다.
⑤ 어느 누구에게도 해탈은 가르침을 통하여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바로 이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세존이시여, 당신은, 당신이 깨달은 시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아무에게도 말이나 가르침으로 전달하여 주실 수도, 말하여 주실 수도 없습니다. (55p)
→ 어떤 다른 가르침, 더 나은 가르침은 없다. 모든 가르침과 스승을 떠나 홀로 목표에 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책에서 사문들은 '해탈'의 경지를 목표로 매일 수행하고, 가르침을 받고 있다. 싯다르타의 말처럼 과연 해탈의 경지가 가르침을 통해 달성할 수 있는 경지일까? 사실 생각해 보면 개개인마다 '해탈'이라는 경지의 정의는 다를 것 같다. 우리들만 하더라도 모두가 이상적인 상태와 상황을 꿈꾸지만, 이는 개개인의 욕구에 따라 수준이 다를 것이다. 이 역시 가르침으로 채워질 수 없고, 스스로 찾아 나서야 '진정한 채움'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⑥ 원인을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바로 생각이라고 여겨졌으며 오직 그렇게 함으로써만 느낌이 인식으로 바뀌어 사라지는 일이 없이 본질적인 것이 되고 그 인식 속에 있는 것이 빛을 발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59p)
→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워 조금 더 생각이 필요할 것 같다.
⑦ 그 어떤 가르침도 받지 말아야지. 나 자신한테서 배울 것이며, 나 자신의 제자가 될 것이며, 나 자신을, 싯다르타라는 비밀을 알아내야지. (62p)
→ 1부의 마지막. 2부의 시작인 카말라를 마주하기 전 깨닫는 부분이다. 위에 언급했듯이 세존 고타마와 그의 모든 가르침을 남겨두고 떠난다. 그 후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게 된다. 싯다르타는 본질 그리고 자아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수행하였으나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자기가 가장 모르는 존재라고 언급한다.
나는 나를 잘 알까? 나는 누구인지, 왜 사는지, 왜 회사에 다니는지, 사랑은 왜 하는지, 왜 슬퍼하는지, 왜 고독한지, 왜 기쁜지 등..
남을 알기 전에, 그리고 알려고 하기 전에 나 스스로에 대해서 한번 깊게 고민해 보는 것도 중요한 듯싶다. 삶은 관계의 연속이고, 단절의 연속이다.
⑧ 사랑이란 구걸하여 얻을 수도 있고, 돈을 주고 살 수도 있고, 선물로 받을 수도 있고, 거리에서 주워 얻을 수도 있지만, 그러나 강탈할 수는 없는 거예요. (86p)
→ 도시에 입성한 후, 카밀라에게 한눈에 반한 싯다르타가 그녀로부터 사랑에 대해 배운다. 위 내용은 싯다르타가 카밀라를 겁탈할 수도 있다고 말하자 카밀라가 그를 가르치는 부분이다. 소설에서 싯다르타가 만난 첫 번째 외부인 카밀라. 싯다르타는 그녀에게서도 무엇인가를 배운다. 아니, 배우려 한다. 그가 만나는 모두를 스승이라 여긴다.
과연 나는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을 스승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들로부터 배울 점이 있다고 여기는가. 확신할 수 없다. 내 무의식 속의 세상은 '배울 점이 있는 사람'과 '배울 점이 없는 사람'으로 나뉘어 있는 것 같다. 조금 더 사색이 필요한 부분인 것 같다.
⑨ 형상의 세계란 무상한 것, 덧없는 것이야. 우리의 옷차림이나 머리카락과 몸뚱이 그 자체도 덧없기는 마찬가지이고. (135p)
→ 싯다르타는 숲 속에서 깊은 잠에 빠지게 되고, 우연히 지나가던 사문이 이를 보고 싯다르타가 깰 때까지 옆에서 기다려준다. 이 사문은 그의 친구 고빈다였다. 그러나, 고빈다는 싯다르타를 알아보지 못한다. 싯다르타는 카마스와미와 함께 한 후부터 많은 부를 축척했고, 그만큼 좋은 옷, 머리, 신발을 갖추고 있었다.
그를 보고 고빈다는 순례자나 사문의 행색은 아니라고 판단하여 알아보지 못하였고, 이 때문에 알아보지 못했다 말한다. 그러나, 싯다르타는 이런 행색, 형태, 형상은 무의미하다고 한다.
이 부분은 매우 동의하나, 실천하기는 어려운 부분인 것 같다. 중요한 것은, 고유명사라는 점은 분명한 것 같다.
부자, 가난한, 멋있는, 아름다운, 못생긴, 추한, 무서운, 위대한, 소심한 등등의 수식어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그 뒤에 올 고유명사(싯다르타)는 변하지 않는다. 중요한 건 그것이다.
⑩ 내가 바보가 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은 나의 내면에서 다시 아트만을 발견해 내기 위해서였어. 내가 죄를 저지르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은 다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기 위해서였어. 앞으로 나의 길이 나를 어디로 끌고 갈까? 그 길은 괴상하게 나 있을 테지, 나고 싶은 대로 나 있으라지, 그 길이 어떻게 나 있든 상관없이 나는 그 길을 가야지. (140p)
→ 경험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 ③ 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경험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한다. 싯다르타가 뱃사공을 다시 만나기 전에 이를 깨달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⑪ 바주데바는 매우 주의 깊게 그의 말을 귀담아들었다. 그는 싯다르타가 이야기하는 내력, 유년 시절, 배움, 구도 행위, 기쁨, 곤경, 이 모든 것을 경청하면서 자기 내면에 받아들였다. (151p)
→ 뱃사공 바주데바를 다시 만난 싯다르타의 이야기를 바주데바는 진심으로 경청하고 내면으로 받아들인다.
단순히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의 근심을 덜어준다는 말이 있다.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해결책이 아닌 공감을 원하기 때문이 아닐까.
삶을 살아가면서 '잘 듣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나이를 먹을수록 입은 닫고, 귀를 여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이 글을 보는 모든 이들이 그러하길 바래본다.
⑫ 그렇지만 당신이 그에게 강요하지 않고 벌주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당신의 착각이 아닐까요? (172p)
→ 카말라가 독사에 물려 생을 마감하고, 그녀의 딸, 싯다르타의 아들은 바주데바와 싯다르타와 함께 살게 된다. 그러나 아들은 모든 것에 불만이 있었고 아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싯다르타도 (솔직히)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 결국, 싯다르타는 아들에게 아들이 원하지 않는 사랑을 주고 있었다. 아들은 도시로 가길 원했다.
사랑이란 이런 것 같다. 묵묵히 기다리고 인내하며 강요하지 않는 것. 상대방에게 내가 원하는 사랑이 아닌, 상대방이 원하는 사랑을 해줄 것. 내가 상대방에게 요구하는 것은 강요가 될 수도 있고,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것.
⑬ 말이란 신비로운 참뜻을 훼손해 버리는 법일세. 무슨 일이든 일단 말로 표현하게 되면 그 즉시 본래의 참뜻이 언제나 약간 달라져 버리게 되고, 약간 불순물이 섞여 본조되어버리고, 약간 어리석게 되어버린다는 이야기야. (211p)
→ 이 책에서 진정으로 전하는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진리는 말로 할 수 없으며, 형상화할 수 없다는 것. 사실 윤회와 열반이라는 것도 순전한 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다만 윤회, 열반이라는 단어만 존재할 뿐이라는 것.
우리네 삶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말이나 텍스트에 본질을 두기보다는 느끼고 겪고 체감하는 것에 본질을 두고 살았으면 한다. 나와 이 글을 보는 모든 사람들도.
ㆍ첨언
→ 사색할 줄 알고, 기다릴 줄 알고, 단식할 줄 아는 삶을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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